
My White Season
My White Season
에세이
새하얀 도화지 앞에 섰습니다. 캔버스 위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아 낯설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어 설레기도 합니다. 이 사진첩은 바로 그 새하얀 도화지 위에 저만의 색을 채워갈, 나의 40대를 위한 기록입니다.
젊은 날의 제 삶은 어쩌면 너무 많은 색으로 채워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꿈과 열정의 붉은색, 좌절과 슬픔의 회색, 가족을 위한 헌신의 푸른색… 그 모든 색들이 뒤섞여 때로는 탁해지기도, 때로는 찬란하게 빛나기도 했습니다. 화려했지만, 여백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죠.
40대가 된 지금, 저는 가장 맑고 투명한 색인 '하얀색'을 마주합니다. '화이트'라는 콘셉트로 사진을 찍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습니다. 주름 하나하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얀색은 모든 것을 가리는 색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담아내는 색이라는 것을요. 하얀색 배경 위에서 비로소 제 얼굴의 표정, 눈빛, 그리고 세월이 빚어낸 선들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저는 화려한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저 자신입니다. 억지로 활짝 웃기보다는 잔잔한 미소를 짓고, 과장된 포즈보다는 자연스러운 몸짓을 담았습니다. 그 안에는 삶의 무게를 견뎌낸 단단함과, 이제야 비로소 얻게 된 마음의 평온함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얀색이 가진 고요함 속에서, 저는 가장 평화롭고 우아한 저를 발견합니다.
하얀 여백은 저에게 앞으로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이제 저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기대나 타인의 시선에 맞춰 급하게 색을 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색깔, 제가 가고 싶은 길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저만의 그림을 그려나갈 것입니다.
이 사진첩의 마지막 장은 비어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이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질 저의 두 번째 이야기가, 분명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작품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첩은 저에게, 그리고 삶의 새로운 여백을 찾아 나선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나의 40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